삼원회(三元會)를 만드는 뜻은
“삼원회” 란 현 창원시 (昌原市)의 중심이며 뿌리가 되는 옛 창원군(昌原郡)의 세개 면인 창원면(昌原面), 상남면(上南面), 웅남면(熊南면)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옛 텃밭의 모습을 그리워하여, 향인 (鄕人)으로서의 정분을 두터이 나누고, 2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 그리고 아름다운 풍속을 대대(代代) 후손들에게 깨우쳐 줌으로써 고향의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뜻으로 이룩한 모임의 이름입니다. 말하자면, 빛나는 창원을 길이 이어 가자는 “세 뿌리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이곳은 팔용산(八龍山), 천주산(天柱山), 봉림산(鳳林山), 정병산(精兵山), 비음산(飛音山), 대암산(大巖山), 불모산(佛母山), 장복산(長福山)에 에워싸여내동천(洞川), 두 대천(大川), 남천(南川)의 물줄기가 모두 마산만(馬山灣)으로 흐르는 아늑한 고장으로, 옛날엔 거의가 바다였던 듯하며, 신석기 이후부터 사람이 살아온 것으로 여러 유적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곳 선조들은 철기 문화를 빛내었던 해양 겨레로 주조마국(走漕馬國), 골포국(骨浦國)으로 이어지는 강성한 부족이였고, 그 뒤 금관가야 (金官伽倻), 신라에 예속되어 굴자군(屈自郡), 골포현(骨浦縣), 의안군(義安郡)으로 바뀌어 오다가 고려 때는 의창군(義昌郡), 조선 때는 창원부, 창원도호부, 창원대도호부로 개칭되어 왔으며, 조선말에 창원군으로 그 행정명이 굳어진 유서 깊은 곳입니다.
우리 고장 사람들은 대를 이어 용맹을 떨쳤으며 애국충절을 생명으로 지켰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대동 단결하여 왜적을 무리쳤고, 일제 때는 격렬하게 항일 운동을 펼쳤습니다. 비록 농사로 생계하여 가난을 멍에 하였으나, 곳곳에 향교와 서원을 세워 윤리도덕을 보옥같이 갈고 닦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꿔 왔으며, 예나 이제나 전국 각처에서 빛나는 업적으로 국가에 헌신했고 공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와서 우리 고장은 일대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중흥, 공업 입국의 거센 바람은 드디어 우리 창원을 중공업 단지로 바꾸었고,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획 도시로 꾸몄습니다. 그리하여 그림 같은 옛 산천은 모두 헐리고 부조(父祖)의 산소도 파헤쳐졌으며, 정든 고향집도 흔적없이 사라졌고, 가족 같은 이웃들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더욱이 경남 도청을 비롯한
온갖 기관들이 이곳으로 옮겨 와, 이제는 우리 창원이 행정·문화·교육·교통 등 여러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경남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77개의 자연 마을, 7,800여 가구 42,000여 명이었던 인구가 지금은 50여만 명으로 불어, 즐비한 상가와 곳곳의 숲 우거진 공원에서 높은 수준의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급격한 인구 증가와 갑작스런 환경의 도시화에 따라 평화롭고 소박했던 인심은 차츰 거칠어져 가 삭막한 이기적 풍조가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뿌리를 찾고 도의를 바탕으로 한 화목하고 명랑한 지역 사회로 정착시켜야겠다는 의식도 고조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삼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삼원회의 실제적인 사업으로는 우선 유허비(遺墟碑)를 세우고 대종(大鐘)을 만들었으며, 이제는 여기에, 구천을 헤매는 선령(先)들의 안주처가 되게 하고, 고장의 전통 문화와 유물을 보관·관리함으로써 고향을 찾는 향인들의 휴식처가 되고, 향민들의 친목과 결속을 다지는 대화의 쉼터가 될 것이요. 지역 시민의 취미·교양·기술을 닦는 수련장으로도 될 삼원회 회관을 건립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삼원회는 지역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을 연구·추진할 것임을 다짐하면서, 우리의 순수한 취지에 창원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동참과 격려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여기서 태어나 같이 웃고 따라 울던 벗님들이여,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이곳 창원은 우리의 삶을 깨우쳐 준 변함없이 포근한 안식처, 우리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끊임없는 샘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티없이 맑은 정의 (情誼)를 하나로 더욱 다져, 먼 고개 바라보며 가난을 쟁기질하던 그날이 그립거든 이곳에 자주 들러 발전하는 우리 창원을 기리고 또 가꿉시다.
여기는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 우리의 핏줄. 다함없는 우리 사랑 창원 만세 !
2001년 1월 12일